1장
1절 Ὃ ἦν ἀπ’ ἀρχῆς, ὃ ἀκηκόαμεν, ὃ ἑωράκαμεν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ἡμῶν, ὃ ἐθεασάμεθα καὶ αἱ χεῖρες ἡμῶν ἐψηλάφησαν, περὶ τοῦ Λόγου τῆς ζωῆς,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개역개정)
『우리를 이끄시는 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헬라어 번역성경)
태초부터 있는(호 엔 앞 아르케스 Ὃ ἦν ἀπ’ ἀρχῆς)으로 번역된 것은 그것은 아르케로 있었다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한글 번역자들이 호 엔 앞 아르케스를 맨 뒤에 있는 문장인 생명의 말씀과 동일시
생각하여 서로 연결해버린 것이다. 직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것이 아르케스로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들었고, 눈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손으로 만졌다. 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런데, 태초로 번역된 아르케스는 여성명사로서 남성형은 아르콘이다. 아르콘은 통치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성 명사로서 아르케스는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대표격:이끄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한 문장에서도 태초가 아니라, 리더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태초부터
있는』것이 아니라, 『리더로 존재하는 그것』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의미한다. 리더로 존재하는 성령인 것이다.
리더로 존재하는 그 성령을 우리가 들었고, 보았으며, 순간
순간 바라보며, 손으로 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엪셀라페산(ἐψηλάφησαν) 은 손으로 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으로 다루다 라는 의미다. 손으로 성령의 능력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번역을 하자면,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도를 이끄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눈으로 성령의 역사를 보며, 순간 순간 성령을 능력을 바라보며, 손으로 성령의 능력을 다루었다. 이러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루어졌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서, 안수 등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눈먼 자에게 손을 대고 눈을 뜨게할 때, 간단한 말씀을 하시고 손으로 안수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2-3절 καὶ ἡ ζωὴ ἐφανερώθη, καὶ ἑωράκαμεν καὶ μαρτυροῦμεν καὶ ἀπαγγέλλομεν ὑμῖν τὴν ζωὴν τὴν αἰώνιον, ἥτις ἦν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ἐφανερώθη ἡμῖν, ὃ ἑωράκαμεν καὶ ἀκηκόαμεν, ἀπαγγέλλομεν καὶ ὑμῖν, ἵνα καὶ ὑμεῖς κοινωνίαν ἔχητε μεθ’ ἡμῶν. καὶ ἡ κοινωνία δὲ ἡ ἡμετέρα μετὰ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μετὰ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개역개정)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너희에게 증언하며 전하노라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혀 전함은 너희 또한 우리와 친교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생명은 그 생명(헤 조에 ἡ ζωὴ)이다. 그
생명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온 성령의 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1장 1절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역사는 그 생명(예수
그리스도)이 나타내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보았고 들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교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친교(사귐)에 있다.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아버지와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율법주의, 지식으로 전하고 지식으로 듣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영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마음을 공유하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5절 καὶ ταῦτα γράφομεν ἡμεῖς ἵνα ἡ χαρὰ ἡμῶν ᾖ πεπληρωμένη. Καὶ ἔστιν αὕτη ἡ ἀγγελία ἣν ἀκηκόαμεν ἀπ’ αὐτοῦ καὶ ἀναγγέλλομεν ὑμῖν, ὅτι ὁ Θεὸς φῶς ἐστιν καὶ σκοτία ἐν αὐτῷ οὐκ ἔστιν οὐδεμία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개역개정)
『우리가 이것들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 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빛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빛은 바로 하나님의 빛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신데, 성도는 좀 약한 빛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 분이 비추는 빛이 바로 성도의 빛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성도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그분의 빛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6-7절 Ἐὰν εἴπωμεν ὅτι κοινωνίαν ἔχομεν μετ’ αὐτοῦ καὶ ἐν τῷ σκότει περιπατῶμεν, ψευδόμεθα καὶ οὐ ποιοῦμεν τὴν ἀλήθειαν· ἐὰν δὲ ἐν τῷ φωτὶ περιπατῶμεν ὡς αὐτός ἐστιν ἐν τῷ φωτί, κοινωνίαν ἔχομεν μετ’ ἀλλήλων καὶ τὸ αἷμα Ἰησοῦ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καθαρίζει ἡμᾶς ἀπὸ πάσης ἁμαρτίας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개역개정)
『만일 우리가 그 분과 친교한다고 말하며 어둠 안에서 걸으면 거짓말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그 분께서 빛 안에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안에서 걸으면 우리가 서로 친교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죄의 문제가 혼란을 주고 있다. 성도들은 빛 안에 거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고,
죄를 이겨나가도록 성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인간들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을 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어둠에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라는
의미다. 말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의미를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8-9절 ἐὰν εἴπωμεν ὅτι ἁμαρτίαν οὐκ ἔχομεν, ἑαυτοὺς πλανῶμεν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οὐκ ἔστιν ἐν ἡμῖν. ἐὰν ὁμολογῶμεν τὰς ἁμαρτίας ἡμῶν, πιστός ἐστιν καὶ δίκαιος, ἵνα ἀφῇ ἡμῖν τὰς ἁμαρτίας καὶ καθαρίσῃ ἡμᾶς ἀπὸ πάσης ἀδικίας.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개역개정)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법은 죽은 자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죽은 자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덮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므로 칭의를 얻었다고, 자신은 죄가 없어졌으므로 의인라고 말한다면, 그는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하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이며,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셈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이것이
탐욕이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어하는 마음이며, 우상이며, 옛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마음을 죽이라고 말씀한다. 인간이 스스로 죽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직접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와
연합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으면, 함께
새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신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죽을 죄인라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를 찾아오시는 것이다.
죄를 자백한다는 의미는 세상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의 원죄를 포함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단번에 죄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신다. 로마서 6장 8절과 8장 1절에서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6:7), 다시는 죄를 묻지 않겠다(8:1) 원죄만 용서해주고, 세상죄는 과거의 것만 용서해주고, 미래의 것은 용서하지 않고,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야말로
인본주의적인 생각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죄를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죄는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이 원죄인 것이며, 그 원죄로 인하여 계명을
어기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10절 ἐὰν εἴπωμεν ὅτι οὐχ ἡμαρτήκαμεν, ψεύστην ποιοῦμεν αὐτὸν καὶ ὁ λόγος αὐτοῦ οὐκ ἔστιν ἐν ἡμῖν.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개역개정)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 분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들며 또한 그 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에덴동산에 대해서 교회 사람들은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에덴동산을 하나님 나라도 아니고, 세상도
아닌 신화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며,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죄로 인해서 전가되었다고 생각하므로 탐욕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는
말은 모든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적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직접적 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덴동산의 비유)에서
범죄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죄보다 세상죄에 관심을 치중하고 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죄로 여기므로, 그 이전에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운 그 마음이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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